
<KTX매거진 2026.3월호 함께여행-캔가 편>
수선조형이라는 것은 생소합니다.
수선이란 말도 흔치 않은 직업인데 조형이 붙다니요.
수선은 허리 품을 줄이거나 바지 길이를 줄이는 것이 아니었나요?
네 아닙니다.
수선은 실과 직물로 더 낫게 만드는 폭넓은 행위입니다.
리폼도 수선이고, 옷을 줄이는 것도 수선이며, 옷을 뜯어고치는 것도 수선이지요.
그리고 이것을 실용을 넘어 비실용의 영역까지 나아가는 만듦을 수선조형이라 합니다.
여기까진 납득이 되셨을까요.
그러셨다면 저는 꽤나 만족스런 자기소개를 한 것 같습니다.
.
.
왜냐하면 수선조형은....
제가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입니다.
-

말을 왜 만들어야 했는가.
저는 저를 이해하고 싶었고, 제가 스스로를 납득하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캔가를 처음하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갑니다.
IT회사에서 갓 퇴사해 가방 디자인을 하는 사람.
미대 출신도 아닌 패브릭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
팔로워 1000을 갓 넘긴 패션잡화 브랜드를 하는 사람.
저는 저를 소개할 때면 쪼그라들었습니다.
나를 디자이너라 소개해도 될까?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면 너가 왜 작가냐고 하지 않을까?
캔가를 브랜드라고 하면 다들 팔로워를 보고 비웃지 않을까?
처음엔 나를 소개하기를 피했다가
피치 못하게 소개하는 상황이 되면,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고는 캔가를 감췄습니다.
어쩌다 누군가 캔가라고 운을 떼면, 네 저 이런거 해요, 라고 말하곤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어느날, 명함을 팔 일이 생겼습니다.
직무를 적어야 했고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던 저는 디자이너라고 적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명함을 건네던 때, 받은 분이 ‘아 디자이너세요’ 하고 말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저를 디자이너로 대했습니다.
그분의 태도에 맞게 저는 디자이너로서 스스로를 포장하고 행동하고 대화를 전개했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을 달고 대화를 할 땐, 캔가의 팔로워가 몇명이든 업력이 몇년이든 그냥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는 일만을 놓고 말했습니다.
아, 우리는 스스로에게 내린 정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직 누군지 몰라서, 내가 나를 뭐라고 정의할지 몰라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왜 나는 미대를 나오거나 패션과를 나와야만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제가 다니던 회사엔 금융을 전공한 에디터도 있었고, 법학을 전공한 사서도 있었으며 대학을 나오지 않은 개발자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부끄러움은 잠시 접어두고, 그렇게 몇년을 가방디자이너로 지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점점 가방은.. 팔리는 디자인이 아닌 나만의 디자인으로 바뀌어갔습니다.

-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
물건을 팔고 싶은 걸까. 돈을 벌고 싶은 걸까.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은 걸까. 셋다 해야만 하긴 하는데..
상품을 파는 일만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술만 해야하는 게 아닙니다.
왜 이 둘을 포괄하는 단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까요.
돈을 벌든 만들기만 하든, 교집합은 수선과 재봉이고.
상업적인 물건이든 비상업적인 물건이든 시각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조형.
수선과 조형. 그렇게 수선조형.
직물과 실로 무언가를 더 새로이, 시각적으로 만들어내는 일.
저는 저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정의한 수선 조형은 때로는 상업적으로, 때로는 비상업적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
수선조형을 한다고 정의하고부터
저를 소개하는 일이 조금 기대됩니다.
누군가 그게 뭐냐고 물어볼 때,
이미 사회적 틀에 박힌 정의를 제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제가 내린 정의를 누군가에게 퍼뜨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선조형을 하고 있어요’ 라는 말은
미대나온 작가도 수선실에서 일하는 수선가도 아닌
'직물을 고쳐 더 아름답게 만드는 수선조형가' 라는 제가 정한 직업의 룰인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미대를 나오지 않아도 괜찮고,
디자인회사 출신이 아니어도 괜찮고,
양장기능사가 아니어도 괜찮으며,
난해한 무언가를 만드는 작가가 아니어도,
이제는 좋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아 그런 직업이 있군요’ 라고 모두들 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르는 직업이 또 있구나, 하는 반응이랄까요.
직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요즘,
나만의 일에 내가 이름붙인다는 것에 눈을 흘기는 사람은,
사실 나뿐이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언어에 쉽게 갇힙니다.
엄마라는 단어는,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양육자와 피양육자로 서로를 정의합니다.
고용자라는 단어는, 내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아닌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상업적 관계로 서로를 정의합니다.
이토록 언어는 우리를 규정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규정해본 경험이 얼마나 있을까요?
너는 내 딸이야, 너는 학생이야, 너는 직원이야, 너는 선생이야.
대부분 주어집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규정해보는 경험도 꽤나 새롭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하나의 규정에 갇힐 필요가 없어요.
즉, 내가 나를 다양하게 규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선도 하고, 조형도 하고, 선생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며, 캔가의 작업실에 오는 분들을 즐겁게 맞이하고픈 호스트이자 제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더 낫게 하고 싶은 구성원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으로, 선생님들은 '대표님'으로, 과목은 '디자인'으로...다양하게 불리고 정의되었던 고등학교 패션과 수업
오래 전, 밴드 보컬을 하던 아는 오빠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제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빠는 음악을 관두는 게 아쉽지 않아요?’
그 오빠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음악을 관둔적이 없어. 난 음악을 평생할거야’
10년이 지난 지금도 오빠는 계속해서 노래합니다.
모임에서도 하고, 청소하면서 하고, 작업실에서 하고, 결혼식장에서 하고, 교회에서도 하고, 무대에서도 합니다.
오빠는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라는 한 단어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달리는 사람이자, 자영업자이자, 도쿄여행에 미친자이자,
달리든 도쿄에가든 노래와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이쯤이면 그를 새롭게 정의할 단어가 필요해보입니다.
-
누가 정했는지 모를 한 단어에 굳이,
나를 욱여넣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다양한 단어들, 내가 되고 싶은 무언가,
나를 정의하고픈 무언가를 아직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미래의 정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모르기에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이유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정의로는 설명되지 않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단어일 수 있으며 그 개념 또한 내 안에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저의 언어를, 제가 만들어가기로 해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언어를, 한글자 한글자..쌓아가는 나날을 보내시기를..

<KTX매거진 2026.3월호 함께여행-캔가 편>
수선조형이라는 것은 생소합니다.
수선이란 말도 흔치 않은 직업인데 조형이 붙다니요.
수선은 허리 품을 줄이거나 바지 길이를 줄이는 것이 아니었나요?
네 아닙니다.
수선은 실과 직물로 더 낫게 만드는 폭넓은 행위입니다.
리폼도 수선이고, 옷을 줄이는 것도 수선이며, 옷을 뜯어고치는 것도 수선이지요.
그리고 이것을 실용을 넘어 비실용의 영역까지 나아가는 만듦을 수선조형이라 합니다.
여기까진 납득이 되셨을까요.
그러셨다면 저는 꽤나 만족스런 자기소개를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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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수선조형은....
제가 만들어낸 말이기 때문입니다.
-
말을 왜 만들어야 했는가.
저는 저를 이해하고 싶었고, 제가 스스로를 납득하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캔가를 처음하던 시절로 거슬러올라갑니다.
IT회사에서 갓 퇴사해 가방 디자인을 하는 사람.
미대 출신도 아닌 패브릭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
팔로워 1000을 갓 넘긴 패션잡화 브랜드를 하는 사람.
저는 저를 소개할 때면 쪼그라들었습니다.
나를 디자이너라 소개해도 될까?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면 너가 왜 작가냐고 하지 않을까?
캔가를 브랜드라고 하면 다들 팔로워를 보고 비웃지 않을까?
처음엔 나를 소개하기를 피했다가
피치 못하게 소개하는 상황이 되면,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고는 캔가를 감췄습니다.
어쩌다 누군가 캔가라고 운을 떼면, 네 저 이런거 해요, 라고 말하곤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어느날, 명함을 팔 일이 생겼습니다.
직무를 적어야 했고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던 저는 디자이너라고 적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명함을 건네던 때, 받은 분이 ‘아 디자이너세요’ 하고 말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저를 디자이너로 대했습니다.
그분의 태도에 맞게 저는 디자이너로서 스스로를 포장하고 행동하고 대화를 전개했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을 달고 대화를 할 땐, 캔가의 팔로워가 몇명이든 업력이 몇년이든 그냥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는 일만을 놓고 말했습니다.
아, 우리는 스스로에게 내린 정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직 누군지 몰라서, 내가 나를 뭐라고 정의할지 몰라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왜 나는 미대를 나오거나 패션과를 나와야만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제가 다니던 회사엔 금융을 전공한 에디터도 있었고, 법학을 전공한 사서도 있었으며 대학을 나오지 않은 개발자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부끄러움은 잠시 접어두고, 그렇게 몇년을 가방디자이너로 지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점점 가방은.. 팔리는 디자인이 아닌 나만의 디자인으로 바뀌어갔습니다.
-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
물건을 팔고 싶은 걸까. 돈을 벌고 싶은 걸까.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은 걸까. 셋다 해야만 하긴 하는데..
상품을 파는 일만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술만 해야하는 게 아닙니다.
왜 이 둘을 포괄하는 단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까요.
돈을 벌든 만들기만 하든, 교집합은 수선과 재봉이고.
상업적인 물건이든 비상업적인 물건이든 시각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조형.
수선과 조형. 그렇게 수선조형.
직물과 실로 무언가를 더 새로이, 시각적으로 만들어내는 일.
저는 저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정의한 수선 조형은 때로는 상업적으로, 때로는 비상업적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
수선조형을 한다고 정의하고부터
저를 소개하는 일이 조금 기대됩니다.
누군가 그게 뭐냐고 물어볼 때,
이미 사회적 틀에 박힌 정의를 제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제가 내린 정의를 누군가에게 퍼뜨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선조형을 하고 있어요’ 라는 말은
미대나온 작가도 수선실에서 일하는 수선가도 아닌
'직물을 고쳐 더 아름답게 만드는 수선조형가' 라는 제가 정한 직업의 룰인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미대를 나오지 않아도 괜찮고,
디자인회사 출신이 아니어도 괜찮고,
양장기능사가 아니어도 괜찮으며,
난해한 무언가를 만드는 작가가 아니어도,
이제는 좋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아 그런 직업이 있군요’ 라고 모두들 말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르는 직업이 또 있구나, 하는 반응이랄까요.
직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요즘,
나만의 일에 내가 이름붙인다는 것에 눈을 흘기는 사람은,
사실 나뿐이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언어에 쉽게 갇힙니다.
엄마라는 단어는,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양육자와 피양육자로 서로를 정의합니다.
고용자라는 단어는, 내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아닌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상업적 관계로 서로를 정의합니다.
이토록 언어는 우리를 규정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규정해본 경험이 얼마나 있을까요?
너는 내 딸이야, 너는 학생이야, 너는 직원이야, 너는 선생이야.
대부분 주어집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규정해보는 경험도 꽤나 새롭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하나의 규정에 갇힐 필요가 없어요.
즉, 내가 나를 다양하게 규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선도 하고, 조형도 하고, 선생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며, 캔가의 작업실에 오는 분들을 즐겁게 맞이하고픈 호스트이자 제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더 낫게 하고 싶은 구성원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으로, 선생님들은 '대표님'으로, 과목은 '디자인'으로...다양하게 불리고 정의되었던 고등학교 패션과 수업
오래 전, 밴드 보컬을 하던 아는 오빠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제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빠는 음악을 관두는 게 아쉽지 않아요?’
그 오빠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음악을 관둔적이 없어. 난 음악을 평생할거야’
10년이 지난 지금도 오빠는 계속해서 노래합니다.
모임에서도 하고, 청소하면서 하고, 작업실에서 하고, 결혼식장에서 하고, 교회에서도 하고, 무대에서도 합니다.
오빠는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라는 한 단어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달리는 사람이자, 자영업자이자, 도쿄여행에 미친자이자,
달리든 도쿄에가든 노래와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이쯤이면 그를 새롭게 정의할 단어가 필요해보입니다.
-
누가 정했는지 모를 한 단어에 굳이,
나를 욱여넣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다양한 단어들, 내가 되고 싶은 무언가,
나를 정의하고픈 무언가를 아직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미래의 정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모르기에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이유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정의로는 설명되지 않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단어일 수 있으며 그 개념 또한 내 안에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저의 언어를, 제가 만들어가기로 해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언어를, 한글자 한글자..쌓아가는 나날을 보내시기를..